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 제18왕조 (문단 편집) === 이집트 전성기의 시작 === 그 기원은 기원전 1580년 [[라호테프]]가 세운 [[이집트 제17왕조]]이다. 17왕조의 [[카모세]]의 뒤를 이은 초대 파라오 '''[[아흐모세 1세]]'''가 기원전 1550년에 즉위하면서 제18왕조가 시작되었다. 아흐모세 1세는 하이집트를 점유하던 [[힉소스]]의 [[이집트 제15왕조]]를 완전히 멸망시켰고 이집트를 재통일해 [[이집트 신왕국]] 시대를 열었다. 기원전 1525년 아흐모세 1세의 셋째 아들인 '''[[아멘호테프 1세]]'''는 이집트 외부로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. 북쪽으로는 지중해 동부 레반트를, 남쪽으로는 지금의 수단인 누비아의 쿠시 왕국을 공격해 영토를 넓혔다. 고대 이집트 하면 유명한 것들 중 하나인 [[사자의 서]]도 이 시기에 완성된 것. 기원전 1504년 즉위한 3대 파라오 '''[[투트모세 1세]]'''의 경우에는 시리아 원정을 떠났다가 평소의 이집트인이 보던 [[나일 강]]과 흐름이 정반대인 [[유프라테스 강]]을 맞이했다. 이 때문에 투트모세 1세의 별칭으로는 '역류를 건넌 자'가 있다. 건축 사업을 벌이는 것도 잊지 않아, 많은 [[오벨리스크]]를 남겼다. 기원전 1493년 즉위한 4대 파라오 '''[[투트모세 2세]]'''는 후궁의 아들로 정통성이 불안정하여 이복 누이인 [[하트셉수트]]와 결혼했다. 누비아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했다. 기원전 1479년 투트모세 2세가 사망하자, 아직 어린 아들 [[투트모세 3세]]를 대신하여 '''[[하트셉수트]]'''가 섭정이자 5대 파라오로서 즉위했다. 그녀의 치세에 이집트는 부강해졌다. [[힉소스]]와 관련한 기록이 말살되었으며, 기원전 1460년대 중에 [[하트셉수트의 장제전]]을 건설했다. 기원전 1458년 하트셉수트가 사망하자 마침내 6대 파라오 '''[[투트모세 3세]]'''의 단독 통치가 시작되었다. 그는 재위기간 첫 20년 간 17번의 정복 전쟁을 벌일 정도로 전쟁광이었다. 카데시 등을 정복하며 오리엔트 세계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. [[미탄니]]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바 있다. 기원전 1430년대에는 하트셉수트에 관한 기록을 지우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. 기원전 1427년 즉위한 7대 파라오 '''[[아멘호테프 2세]]''' 시기에는 전쟁이 줄어들고 미탄니와의 불편한 공존이 이루어졌다. 26년간의 치세 동안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다. 기원전 1401년에는 '''[[투트모세 4세]]'''가 8대 파라오로 즉위했다. 그는 모래에 묻힌 [[스핑크스]]를 깨웠다는 설화로 유명하며, 이 일화는 최근 투트모세 4세의 불안정한 정통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창작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. 기원전 1391년에 즉위한 9대 파라오 '''[[아멘호테프 3세]]'''는 건축과 문화 분야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면서 동시에 무예에도 뛰어난 성군이었다. 기원전 1370년대 즈음 페르하이 궁전을 짓고, 기원전 1360~50년대에는 파라오가 30년 이상 재위할 때마다 개최되는 세드 축제를 열었다. 그는 기원전 1353년에 사망했고, 아들인 [[아멘호테프 4세]]가 뒤를 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